농구황제 마이클 조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자유투 라인에서부터, 말 그대로 날아가서 덩크슛을 꽂는 마이클 조던. 그래서 붙은 별명이 '에어(AIR)' 조던이다. 출처: 나무위키

 

어린 시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1963년 2월 17일에 미국 뉴욕주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플로리다주 릿츠에서 자랐으며, 어린 시절부터 농구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던은 어릴 때부터 경쟁심이 강하고 농구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농구팀에 합류하고, 그로부터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농구팀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조던은 이후 크게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농구로 많은 상을 받았으며, 특히 1978년에는 North Carolina의 Laney High School에서 플레이하는 동안 농구팀을 주도하여 주말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조던은 대학 시절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1982년에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North Carolina University)의 농구팀인 Tar Heels에서 참여하여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챔피언십을 우승으로 마감하였습니다. 그해 조던은 챔피언십 결승에서 마지막 점수를 넣는 결정적인 슛을 날렸는데, 이번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The Shot"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조던은 대학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낸 후 1984년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불스로 이적했습니다. 그 후, 그는 전설적인 농구 선수로 급부상하며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시카고 불스 마이클 조던은 1984년에 NBA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불스로 입단했습니다.

 

 

 

시카고 불스 시절

이후 그는 시카고 불스에서 1993년까지 플레이하며 탁월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아래는 조던의 시카고 불스 시절의 주요 경력입니다.

 

1984-1985 시즌: 조던은 신인 선수로서 주목받았으며, 평균 28.2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로 탁월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이로써 그는 NBA 신인 연봉 최우수 선수상과 올스타 게임 출전을 차지했습니다.

 

1986-1987 시즌:조던은 평균 37.1점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고, 또한 스틸 리더로도 선정되었습니다. 이 시즌에 그는 플레이오프에서 첫 번째 플레이오프 시리즈 승리를 이루었습니다.

 

1987-1988 시즌: 조던은 평균 35점 이상을 기록하여 다시 득점왕에 올랐으며, 세 번째 연속으로 NBA 올스타에 출전했습니다. 이 시즌에는 MVP(Most Valuable Player, 가장 가치 있는 선수)에도 선정되었습니다.

 

1988년 하계 올림픽: 마이클 조던은 미국 농구 국가대표로 참가한 서울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는 팀을 이끄는 주축 선수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특히 결승전에서 조던은 포르투갈을 상대로 20점을 기록하여 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1990-1991 시즌: 조던은 드디어 NBA 챔피언십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정규시즌에서 평균 31.5점을 기록하며 득점왕에 올랐고, 플레이오프에서도 평균 31.1점을 기록하여 불스를 NBA 챔피언으로 이끌었습니다. 이 시즌에 조던은 MVP, NBA 챔피언십 MVP 등 다양한 상을 수상했습니다.

 

1992-1993 시즌: 조던은 세 번째 NBA 챔피언십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시즌에 그는 정규시즌과 플레이오프에서 모두 평균 30점 이상을 기록하며 불스의 중심 선수로서 활약했습니다. 그 해의 NBA 챔피언십 결승에서 조던은 전설적인 "커튼콜" 드라이브로 결승 포인트를 기록하며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상대로 3번째 챔피언십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이러한 경력을 통해 마이클 조던은 시카고 불스 시절에 불멸의 전설로 남게 되었으며,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은퇴와 그 후 마이클 조던은 1993년에 은퇴한 후, 두 차례의 복귀를 경험했습니다.

 

 

은퇴 그 이후

그의 시카고 불스 이후의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은퇴: 1993년 10월 6일, 조던은 은퇴 선언을 했습니다. 이후 약 1년 동안은 농구 경기장을 떠나 야구 선수로서 시카고 화이트 속스(Chicago White Sox) 소속의 마이너 리그에서 활동했습니다.

 

첫 번째 복귀 - 시카고 불스: 1995년 3월 18일, 조던은 NBA로 돌아와 시카고 불스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1995-1996 시즌부터 1997-1998 시즌까지 불스에서 플레이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조던은 불스를 3번의 연속 NBA 챔피언으로 이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1996년과 1997년에는 NBA 챔피언십 MVP에 선정되었으며, 1998년에는 불스가 뉴욕 닉스(New York Knicks)를 상대로 6번째 챔피언십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두 번째 복귀 - 워싱턴 위저즈: 2001년 9월 25일, 조던은 워싱턴 위저즈(Washington Wizards)와 계약하여 농구 경기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2001-2002 시즌부터 2002-2003 시즌까지 위저즈에서 플레이했습니다. 이러한 복귀는 주로 조던의 재능과 열정을 증명하고 경험을 나누기 위해 이루어졌지만, 그의 플레이는 예전만큼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일화들

그의 경력은 많은 흥미로운 일화들로 가득합니다. 

 

"플루 게임" (Flu Game): 1997년 NBA 플레이오프 시리즈 중 하나인 시카고 불스와 유타 재즈의 경기에서 마이클 조던은 심각한 몸 상태로 무릎이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플레이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조던은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주며 38점을 득점하고 시카고 불스가 승리하도록 이끌었습니다.이 경기는 "플루 게임"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던이 얼굴에 광기어린 표정으로 공을 던지는 장면은 전설적인 순간으로 남았습니다.

 

"88점" 경기: 1986년 3월 28일, 마이클 조던은 보스턴 셀틱스와의 경기에서 역대 높은 득점 기록 중 하나를 세웠습니다. 그는 15개의 리바운드와 2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23개의 필드 골을 성공시켜 88점을 득점했습니다. 이 경기는 조던의 놀라운 공격력과 슈팅 능력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시입니다.

 

"덩크 대회": 마이클 조던은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덩커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1988년 NBA 올스타 웨이크 업 덩크 대회에서, 조던은 자유로운 착지로 높은 점수를 획득하면서 관중들을 압도했습니다. 이 대회에서의 그의 놀라운 덩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전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2번째 은퇴": 1993년에는 조던이 농구 선수로서 최고조의 성공을 거둔 이후 의외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아버지가 살해되어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은퇴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95년에 복귀하고 시카고 불스로 돌아와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화들은 마이클 조던의 농구 경력에서 일부에 불과합니다. 조던은 농구 역사상 가장 큰 선수 중 하나로 꼽히며, 그의 경기와 성과는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와 기억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2003년 4월 16일에 정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농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향력과 성과는 농구 역사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는 최고의 농구 선수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